공간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장소 – 창원시립미술관 공모안의 공간계획 (2022)
공간 이전의 장소를 상상하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을 ‘보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도시 속에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사회적 기관이다. 박민환 건축가의 창원시립미술관 공모안은 이 점에서 뚜렷한 지향을 품는다.
그가 제안한 이 미술관은 건축적 형식에 앞서, ‘공간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장소’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곧 장소가 기능보다 앞서며, 공간이 목적화되기 이전, 예술과 삶이 스며드는 토대로서 작동하는 미술관을 설계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흐름의 장소, 경계의 해체
박민환의 제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흐름’이라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미술관의 폐쇄성과 구획성을 넘어, 사람과 예술, 도시와 자연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흐름의 장소가 바로 이 미술관의 골격이다.
복도는 단순한 순환 통로가 아닌, 7.5m 폭의 광장형 회랑으로서 기능하며, 전시 외에도 강연, 경매, 퍼포먼스 등 공공 행위가 펼쳐지는 열려 있는 축이 된다. 이 복도는 동서 방향으로 미술관 전체를 관통하고, 남북으로 펼쳐진 기획·상설·XR 전시실을 통합하는 주체로 작용한다.
그 결과, 전시공간은 격리된 방(room)의 연속이 아니라, 연결된 풍경(scene)의 연속으로 재구성된다. 공간 간의 전이에서 생기는 ‘틈’은 관람자를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적극적 경험자로 변화시킨다.
추상적 유연성과 물리적 명료함
전시실 구성은 실용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탁월한 균형을 보여준다. 높이 8미터에 달하는 층고는 대형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물리적 잠재력을 확보하며, 기둥이 없는 구조는 전시 방식의 자유를 제공한다.
기획전시실의 상부 천창은 자연광을 제어하면서도, 빛을 건축의 구성 요소로 끌어들인다. 마치 빛이 그림을 감싸는 액자처럼, 공간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상설전시실 또한 모듈화가 가능한 평면 구조로 계획되어, 시간과 주제에 따라 해체와 재구성이 가능하다.
이 전시실들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도, 필요시 상호 통합되어 확장성과 가변성의 미학을 보여준다. 미술관은 하나의 기계적 시스템이 아니라, 숨 쉬고 변화하는 유기체에 가깝다.
‘아트패스’라는 도시적 궤적
이 미술관이 단순한 건축 단위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도시와의 관계 맺음 방식 때문이다. ‘아트패스’라 불리는 흐름은 미술관의 내부와 외부, 프로그램과 사람, 예술품과 자연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궤적이다.
1층의 사회교육시설, 로비와 도서관, 조각정원, 그리고 상점과 카페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설은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이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동작한다. 교통 접근성 또한 탁월하게 설계되어, 시민의 일상 속으로 미술관이 스며들 수 있는 다층적 접점을 형성한다.
이것은 미술관이 도시 안의 ‘건물’이 아닌, 도시의 한 기관, 혹은 기능하는 풍경으로 작동하도록 만든 설계적 선언이다.
기억 이전의 감각을 위한 건축
박민환 건축가는 이 미술관을 통해 공간을 다시 ‘장소’로 되돌리려 한다. 그가 말하는 ‘공간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이란, 감각이 아직 개념화되지 않았고, 경계가 아직 선명하지 않던 기억 이전의 감각적 경험을 의미한다.
이 공모안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건축 유형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틈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감각적 질서를 제안한다.
그 틈은 곧 ‘비움’이자 ‘가능성’이며, 이 미술관은 그 틈을 통해 기억될 것이다.
박민환의 창원시립미술관안은 기능을 넘어서, 예술과 도시, 그리고 삶의 흐름을 엮는 ‘열린 장소’의 비전을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물성을 다루지만, 그 물성 너머의 감각과 시간, 사람의 존재 방식을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