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 세운 여섯 개의 집
– 박민환 건축가의 〈아동복을 위한 집〉, 경계를 흐리고 틈을 짓다
서울 압구정동의 조용한 이면도로. 고급 매장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거리 한켠, 그 틈 사이에서 마치 속삭이듯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공간이 있다. 외관으로는 단순한 쇼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건축가 박민환은 이 40제곱미터 남짓한 협소한 공간 안에 ‘아동복을 위한 여섯 개의 집’을 세웠다. 그것도 외부에 짓는 건축이 아닌, 실내 공간 내부에 세운 집들이다. 이 다소 낯선 개념은 오히려 기존 상업공간의 틀을 벗어나, 공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유도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다. 박민환 건축가는 〈아동복을 위한 집〉을 통해 ‘집’이라는 건축의 원형적 개념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집은 거대한 틀 안에서 물리적 경계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놓이고, 틈을 만들며, 흐름을 구성한다.
공간 안에는 여섯 개의 추상적인 구조물이 놓여 있다. 그들은 집의 형상을 띠고 있으면서도 실제 주거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벽과 창, 틈과 겹침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집들은 각각 아동복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독립적인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의 연결된 풍경을 이룬다.
그 구조물은 각각 단단하게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이로써 내부는 집과 집 사이에 생긴 틈, 여백, 모호한 경계들로 채워진다. 그 틈은 곧 관람자의 이동 경로가 되고, 시선의 흐름이 되며, 공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 경계의 흐림이다.
전통적인 건축에서 경계는 공간을 나누고 프로그램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경계는 오히려 모호함을 통해 관계를 생성하는 장치가 된다. 여섯 채의 집은 명확한 벽으로 구획되기보다는, 서로의 틈으로 연결되고, 흐릿한 접점으로 엮여 있다.
이러한 느슨한 배치는 관람자에게 공간을 따라가게 하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명확한 출입구나 통로 없이, 방문자는 공간 안을 유영하듯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각 집의 구조 안에 전시된 아동복과 조우하게 된다.
틈은 단순한 잉여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이 살아 숨 쉬는 여지이자, 빛과 시선, 사람의 흐름이 스며드는 통로다. 이처럼 경계를 흐리고 틈을 짓는 방식은,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도 풍부한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여섯 개의 집은 모두 건축적으로 추상적인 조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추상성은 결코 공간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다.
박민환 건축가는 복잡한 기하나 장식 대신, 가장 근본적인 건축의 언어—벽, 창, 개구부—만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이 구조물들은 가볍고도 단단하게 서 있으며, 아동복을 하나의 주체로 삼아 전시와 감상의 무대를 만든다.
집의 외부에는 다양한 크기의 창이 열려 있다. 이 창은 단지 외부를 향한 개방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잇는 시선의 통로로 작동한다. 창과 창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겹침 속에서, 전시된 옷은 빛과 그림자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조형적으로 드러난다.
낮에는 자연광이 틈 사이로 스며들고, 밤에는 집 안에서 새어나오는 조명이 거리의 풍경을 물들인다.
이 쇼룸은 단지 기능적인 상업 공간을 넘어서, 작은 건축적 풍경으로 도시 속에 자리한다. 스케일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개념과 구성력은 오히려 더 깊다. 아이들을 위한 옷이 살아가는 공간은, 어쩌면 아이들의 상상처럼 가볍고 자유로우며, 동시에 섬세하고 정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환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공간에서 건축은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한다. 그리고 그 응답은, 여섯 개의 집이 만들어내는 틈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울린다.
'2016-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Case Study Office 51 — 약한 경계로 구현된 강한 공간의 실험 (2020) (0) | 2025.07.07 |
---|---|
용인주택단지 - 경사지의 네 가지 시선 (2018) (1) | 2025.07.07 |